[도쿄 본사 시절]


첫 번째 브리지스톤 타이어는 1930년 4월 9일에 일본 '타비' 삭스 타이어 부서에서 생산되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31년 3월 1일, 설립자 쇼지로 이시바시는 후쿠오카현 쿠르메 시에서 '타비' 삭스 타이어 부서를

독립적이고 인정받는 브리지스톤 타이어 주식회사로 탈바꿈시켰다.


브리지스톤이라는 사명은 설립자인 쇼지라 이시바시의 이름에서 차용되었다. (이시: 돌, 바시: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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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유럽과 북미 기술에 의존하였지만 브리지스톤 타이어는 일본 기술에  기반하여 타이어 제조하려는 방향으로

시선을 두었다. 이 신생회사는 초기에 기술, 생산 및 판매 분야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결국 품질과 제조 수준을

향상시켰고 이는 브리지스톤이 국내 및 해외시장에서 사업을 급속하게 확장시킬 수 있게 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의 도전]


전쟁기간 규제들은 일본 전체적으로 유효했으며, 타이어 산업 또한 이러한 규제의 범위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같은 조치는 브리지스톤

타이어 생산물의 거의 전부가 군사적 수요를 충족시키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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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경, 군사적 충돌상황은 그 종결을 보았지만 브리지스톤 타이어는 전쟁 여파로 처참히 파괴되었다. 도쿄 본사는 공습기간동안 파괴되었으며

해외 자산도 잃었다. 운좋게도, 요코하마와 쿠르메에 있는 공장은 큰 피해 없이 온전하게 남아있었으며 타이어 생산은 전쟁이 끝난 직후

즉시 재가동이 가능하였다.


46일간 계속된 노조파업으로 인해 발생된 문제들을 정리한 이후, 회사 재단은 보다 강화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브리지스톤은 오토바이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브리지스톤의 주 수익창출원은 혼다, 스즈키, 그리고 야마하와 같은

오토바이 제조분야 경쟁업체들에  타이어 공급으로부터 발생되었다. 그리고 이후 브리지스톤은 오토바이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기술 혁신]


1951년, 브리지스톤은 일본에서 레이온 코드 타이어를 판매하기 시작한 첫 번째 회사였으며 생산설비를 현대화하기 위한 5개년 계획이 시작되었다.

같은 해 도쿄 교바시 에 브리지스톤 박물관을 포함한 '제2 브리지스톤 빌딩'을 건립하였다. 매출액은 1953년 100억엔을 돌파했으며 브리지스톤을

일본 내 타이어업계 최고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쿠르메 시에 있는 본사에서 회사 설립 25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이를 축하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바이어스 타이어(나이론 타이어) 판매가 1959년에 시작되었고 1960년에 문을 연 신 도쿄 공장 건설이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이 공장은 현대화에

따라 급격히 팽창하는 타이어 시장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브리지스톤은 1961년 주식 발생 및 주식시장에 상장되었다. 조직시스템이 개편되면서 쇼지로 이시바시를 회장으로 카니치로 이시바시를 사장으로

추대하였다. 조직 개혁을 통한 기업 체계 변화의 일환으로 전체 품질 통제 활동을 포함하는  (W. Edaward Deming 을 기리는) Deming Plan이

채택되었다. 회사는 1963년 명예로운 Deming 상을 수상하였다. 1962년 도쿄 공장에 신 기술센터를 들여놓기 위해 추가적인 시설이 지어졌다.

생산 최전방에서는 1967년 브리지스톤의 첫 래디얼 타이어인 RD10이 제조되었다.


브리지스톤의 전후 첫 해외공장은 1965년 싱가폴에 세워졌고, 1969년 태국에서도 또한 생산이 시작되었다. 브리지스톤에 있어 1960년대는 

해외로의 영토확장의 시기였으며 브리지스톤 미국 판매법인으로서 운영되기 위해 1967년 미국에 브리지스톤 어메리카를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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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석유파동으로 인해 일본의 경제불황이 시작되는 시기에 브리지스톤은 래디얼 타이어 제작을 위한 자체 기술 개발에 보다 집중하였고

국내에 공장이 추가로 지어졌다. 1978년 Super Filler 래디얼 타이어가 출시되었으며, 1979년 회사는 고성능 이태리어로 파워를 뜻하는

포텐자(POTNEZA) 래디얼 타이어를 선보였다.


브리지스톤은 이 시기에 해외시장 진출 및 확장에 보다 적극적이었다. 1976년에 이란과 인도네시아에서 생산을 시작한데 이어, 대만 타이어 제조사에

투자 및 타이어 생산공장을 매입하였으며 1980년에는 호주에서 다양화된 생산품에 필요한 공장을 매입했다. 창립자인 쇼지로 이시바시는 1976년

9월 11월 타계하였다.


1981년 3월 1일, 브리지스톤은 창립 50주년를 기념했다. 같은 시기에 회사는 세계 3대 고무 생산품 제조업체가 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해외 확장전략을 지원하는 본사를 강화하는 활동들을 시작하였다. 태국, 인도, 폴란드, 중국, 미국 그리고 여러 나라들에 신규 생산설비를 세웠다.

또한 회사는 1984년에 Bridgestone Tyre Co., Ltd. 에서 Bridgestone Corporation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Firestone 매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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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브리지스톤은 미 오하이오주 아크론시에 있는 파이어스톤을 매입했다. 매입 이후 파이어스톤 리빌딩에 상당한 재정 및 인적 자원을 투입했던

브리지스톤은 1992년 브리지스톤 파이어스톤 유럽(BFE), 그리고 1993년 브리지스톤 파이어스톤 유에스에이(BFS)와 함께 연간 손익 흑자를 달성했다.

브리지스톤과 파이어스톤은 1990년 합병절차를 거쳐 '브리지스톤 파이어스톤 북미 지주 법인'이 되었다. 브리지스톤 코퍼레이션의 북미 지역 자회사

는 지금 브리지스톤 아메리카로 이름이 바뀌었다. 타이어 부서는 Bridgestone Americas Tire Operation이며, Bridgestone Americas는 2012년 아크론에

1억 불 규모의 기술센터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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